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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풍경

관조의 눈으로 바라본 내적 풍경(2010년 개인전)

Kim, Byung Chill - 김병칠

 

- 관조의 눈으로 바라본 내적 풍경 -

 

출처: 김병칠 그림과 마음

(http://blog.naver.com/jima777?Redirect=Log&logNo=30084856515)

 

 

김병칠展 동영상(2010, 인사아트센터)


 

     觀照의 눈(The eye of contemplation) 1018

60.6x72.7Cm_Mulberry Paper on Canvas, Mixed coloring_2010

 

 

인사아트센터 제4전시장

 

 

2010. 5. 12(수) ▶ 2010. 5.18(화)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 | Tel. 02-736-1020

 

 

觀照의 눈(The eye of contemplation) 1010

45.5x53.0Cm_Mulberry Paper on Canvas, Mixed coloring_2010

 

 

관조의 눈으로 바라본 내적 풍경

김종근 (미술평론가/ 아트앤컬렉터 발행인)

 

 일반적으로 화가가 되는 길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본격적으로 미술대학에 들어가서 미술을 전공하는 아주 보편적인 경우이고, 또 하나는 비록 미술대학은 나오지 않았지만 늦게 미술을 전공해서 화가가 되는 길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의 화가가 되는 길 중에서 어떤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단언 할 수 는 없지만, 미술사에 이름을 얻은 작가 중에는 미술을 전공한 작가 못지않게 훌륭한 작업을 보여준 작가들도 적지 않다. 앙리 루소가 그렇고 반 고흐나 폴 고갱 등이 그렇다. 우리나라에도 박수근 같은 작가는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이대원 같은 작가도 법대 출신이다.

 

  김병칠 또한 처음부터 미술을 전공한 작가는 아니다. 그는 일찍이 경영학을 전공하고 증권회사에 근무하면서 늦게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하여 화가의 꿈을 이룬 경우이다. 언젠가 그는 보란 듯이 화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그의 나이 34살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그는 정말 그의 꿈처럼 직장을 접고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한국의 미에 관심을 갖고 동양사상과 동양철학 그리고 한국화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것을 위해 많은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였고 ,대학원에서 전통 산수화와 문인화로 실경산수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물론 禪공부도 겸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나의 내면의 세계를 가장 알맞게 표현 할 수 있는 재료와 표현 기법은 무엇인가” 라는 점에 고뇌 했다. 전통적인 수묵 산수화로 개인전을 가질 만큼 그는 풍부한 기량을 익혔지만 그의 진지한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觀照의 눈(The eye of contemplation) 1011

53.0x53.0Cm_Mulberry Paper on Canvas, Mixed coloring_2010

 

 

 그는 이 때 캔버스 위에 한지를 가지고 자신만의 기법 제작에 충실했는데, 그것이 캔버스에 닥종이 재료를 가지고 형태와 화면을 만들어 천연 안료로 채색하여 올리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그가 찾아낸 그만의 내면에 맞는 색깔과 방법의 탐색이었다. 동시에 이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의미했다. 스스로의 존재를 묻는다는 것은 철학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작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존재에 대한 성찰을 거듭하면서 그가 도달한 것은자연의 생성과 소멸이란 화두였다. 잘 알다시피 동양철학에서 우주의 본원은 에너지인 氣이다. 이 氣가 작용하여 만물을 형성하고 음양과 오행의 법칙에 의해 이루어지며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삼라만상은 음양으로 구분되고, 생성과 소멸은 木 火 土 金 水 의 오행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자연 속에 인간이 존재하고, 인간 속에 자연이 존재하는 곧 ‘인간은 소우주다.’ 라는 사유방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그에게는 또 다른 사유의 방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 Eye to eye’ 이다. 원래 이 용어는 성 보나 벤투라가 설정한 개념으로 후에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켄 윌버가 설정 주장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 즉 ‘당신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라는 수행 과정에서 얻어지는, 보는 방법에 대한 성찰이다.

 그는 여기서 사물과 대상을 감각의 눈과 이성의 눈을 넘어서, 관조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다. 예술 작품의 창작 과정 속에서 특히 그는 수행이나 명상을 통하여 종교적인 영역을 체험하는 관조의 눈에 주목 했다. 그러한 시각은 곧 그의 그림의 테마를 결정짓게 했다.  <관조의 눈>이란,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순수한 의식을 지닌 상태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다.

 

 

觀照의 눈(The eye of contemplation) 1015

72.7x90.9Cm_Mulberry Paper on Canvas, Mixed coloring_2010

 

 

 

 그의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화폭은 극도로 단순화 되어 있으며 몇 가지의 풍경만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산과 달 혹은 새 한 마리, 꽃 한 송이 등으로 단순하다. 그는 이 세상의 복잡한 풍경을 덜어내고 이렇게 요약된 몇 개의 이미지로 세상을 해독하고 바라본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관조의 눈으로 바라다 본 회화적 시각이다. 그는 이렇게 맑은 눈으로, 영안의 시선으로 사물을 읽어낸다. 그의 화폭에 올려진 간결한 선<線>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황토색 가득한 풍경은 그가 모두 내면의 눈으로 들여다 본 내적 시선이다. 그래서 한지로 다양한 질감을 형태화하고 정성스럽게 만든 화면은 마치 장욱진 그림의 소박한 풍경들처럼 작가의 투명한 영혼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자연을 그린다는 것은 결코 대상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감각을 실현하는 것처럼, 김병칠은 사물과 대상들을 주관적으로 배치한다. 사람과 새와 나무가 있는 풍경에서도 그들은 서로 크기를 자랑하지 않고 중도의 정겹고 소박한 세계가 펼쳐지는가 하면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여리고 맑은 심성을 발견하게 해준다.  김병칠의 이러한 시선은 분명 단 하나의 시선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물을 대하면서 평정을 잃지 않고 평등하게 읽어내는 작가의 이 마음이야 말로 얼마나 훌륭한 화가의 눈인가! 어쩌면 김병칠은 "전원에 널려 있는 눈부신 모든 것이 나를 눈멀게 만들었다"는 고갱의 말처럼 증권회사 직원에서 훌륭한 화가가 된 그의 인생과 맞물리는 숙명 같은 예술가로 다시 태어 날 것이다.

 

 

        

 觀照의 눈(The eye of contemplation) 1002

72.7x60.6Cm_Mulberry Paper on Canvas, Mixed coloring_2010

 

 

작가노트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과 세상의 존재에 대하여 가끔은 의문을 가져보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존재의 의미에 대하여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답답함에 대하여 깊은 사유와 성찰로 풀어보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며 일상을 살아간다.  나의 작업은 이 답답함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를 찾기 위해 떠나는 구도자의 여정에서 출발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물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변화 한다. 다만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는 <자기>라는 폐쇄된 의식에만 지나치게 함몰되어 전체의식의 순수성과 공존성을 보려고 하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전체의식의 순수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뿐이다. 나는 작업을 통하여 우리가 평소에 간과하고 지나쳐버리는 전체의식인 순수의식을 <주객합일>을 통하여 관조의 눈으로 이해하고 느껴보고자 한다. 나의 작업은 존재의 진실인 마음, 관계, 생멸의 조형적 표현이다. 존재의 바탕인 질료로써의 의미를 가지는 <마음>과, 질료에 어떤 조건과 <관계>의 상황이 주어지면  형상으로 드러난다. 주어진 조건에 의하여 생성된 형상은 반드시 <생멸>을 반복하며 변화한다. 이러한 합일의식을 이해하고 체감하기까지의 과정을 조형작업을 통하여 드러내고자 한다.

 

 오감의 접촉을 통하여 보고 느낄 수 있는 형상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또한 형상은 어떤 조건과 상황을 만나면 새롭게 만들어지고 소멸한다는 것도 충분히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오감과 생각을 통하여 접촉 할 수 없는 부분이 모든 형상의 바탕인 마음이다. 이는 접촉과 생각의 이원적 사고를 통해서는 도저히 체감 할 수 없는 초월의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다만 가슴과 몸으로 스스로 그러함을 감지하고 느낄 뿐이다. 보통 이 부분을 종교에서는 진여(眞如) 혹은 영성(靈性)이라는 의미로 표현 한다. 순수의식을 체험하고 보면 이 세 부분은 구분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무시간 속의 초월의식(관조의식)으로 존재할 뿐이다. 나는 이 세 부분을 작업 속에 투영시켜서, 보는 이로 하여금 존재의 진실을 바로 이해하고 느끼게 하고 싶다. 이러한 나의 작업여행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속 될 것이다.

 

 

       

 觀照의 눈(The eye of contemplation) 1003

72.7x60.6Cm_Mulberry Paper on Canvas, Mixed coloring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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