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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이야기

호흡에 대하여

 

 

호흡에 대하여

 

  살면서 호흡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담배연기가 많은 방 안이나, 매연이 심한 거리에서나, 운동을 심하게 하여 박동이 심하게 뛸 때나, 감기 걸려 기침이 심할 때 호흡이 힘들다는 정도 느끼곤 한다. 반대로 시원한 바닷가나 강변으로 나왔을 때나,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삼림욕 숲속에 들어 섰을 때 기분이 상쾌하고 호흡하기 좋아 심호홉을 해보곤 한다.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는 의식하지 않고 자기도 모르게 호흡하고 있다.

  모든 생물은 호흡을 한다. 호흡을 하지 않은 생물은 살아 있지 않고 죽은 물체이다. 호흡은 바로 생명이고 우주의 근본이라는 점을 붓다가 4300년 전에 깨달았다. 원래 붓다는 6년동안 고행을 하면서 깨달음을 얻고자 했으나 무의미함을 알고는 고행을 버리고 삶 속에서 호흡으로 인간적인 고뇌를 해결하는 길을 발견하였다. 호흡은 들숨과 날숨으로 되어 있는데 들숨으로 외부의 공기를 빨아들여 산소를 체내에 공급하는 것이고 날숨으로 체내에서 만들어진 이산화탄소를 몸밖으로 배출하는 것이다.

  숨이 들어오는 것은 생명의 창조이고 숨을 내보내는 것은 그러한 작용을 일단 쉬는 새로움을 위한 휴식이다. 들숨은 생(生)이고 날숨은 멸(滅)이다. 멸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의 생을 위해서 쉬는 것이다. 숨이 들어와서 극치에 이르면 자연히 나가게 마련이어서 入出一如, 즉 들숨과 날숨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들숨과 날숨에 혼란이 생긴다. 어떤 일에 놀랐을 때 숨이 들어오지 못하고 나가는 숨도 제대로 못 나가서 매우 혼란스럽거나 심지어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호흡하면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바로 참된 진리라고 붓다는 설파한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자재(自在)를 얻을 수 있음을 보이고 다시 스스로 자비심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재란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어 서로 대립하지 않으므로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로움이다. 주와 객이 없는 이 세계에서는 너와 내가 대립하지 않기 때문에 자비심이 솟아난다. 심리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에 이르면 주관과 객관의 대립이 없어지고 자비심이 솟아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숨을 바르게 하기 위해 수를 세는 것은 정신을 숨에 집중하여 조화를 이루기 위한 방편이다. 들숨을 세고 날숨을 세면서 정신을 집중하여 서로 따르게 하면 숨은 올바르게 이루어진다. 숨이 들어오고 나감이 그친 듯한 상태가 되어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자연스럽게 숨이 들어왔다 나가는 경지에 도달한다. 그래서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면서 수를 세는 호흡세기 명상이 유명하기도 하다.

  호흡의 중요함을 느낀다면 생활에서 들숨과 날숨이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고 건강하게 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크게 놀라거나 하는 어떤 호흡을 옥죄는 행위로부터 자연스러운 호흡을 만들어내는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실천은 자신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에 크게 도움을 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상태에서 정신을 호흡에 집중하고 들숨과 날숨을 깊게, 의식적으로 크게 하여 흥분을 줄이고 머리에 몰린 피를 폐로 다시 가져오면서 자연스러운 호흡을 회복할 수 있다. 과히 호흡은 생의 근본이고 지혜의 기초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문헌: 정태혁 번역, 해설, 붓다의 호흡과 명상 I, 제2판, 정신세계사, 2001

               로렌스 레산, 명상이란 무엇인가,  이동민 옮김, 태일출판사, 1994)